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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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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작성일25-04-09 17:31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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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유일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유일하게 투항... 1970년 귀순목사 안수 후엔 신앙생활 전념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연합뉴스북한 무장 공비로 청와대를 습격했다가 귀순한 김신조 서울성락교회 원로목사가 9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3세.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군이 기습한 '1·21 사태' 당시 청와대로 향한 부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소속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부대는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로, 같은 해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으로부터 '청와대 습격 작전 지시'를 받고 1월 18일 휴전선을 넘었다. 김 목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미 남파훈련을 꾸준히 받았던 부대라 청와대 습격 훈련은 정작 보름 남짓밖에 안 받았다"며 "독도법(지도를 보는 법)을 반복 훈련하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악구보를 하며 체력을 키웠다"고 회상했다.북악산 백악마루 인근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총알 자국이 남은 소나무. 신상순 선임기자김 목사 등 부대원 31명은 낮엔 땅을 파 휴식을 취하고 밤 시간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만 하루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이동했다. 신분을 숨긴 채 경기 파주까지 진입한 부대원들은 19일 오후 한 야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무꾼이었던 우씨 4형제를 만났다. 부원들은 '땅이 얼어 시체를 묻기 어렵다'는 생각에 "신고하면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협박만 한 뒤 이들을 풀어줬으나, 우씨 형제들이 곧장 경찰에 간첩 신고를 해 동선이 노출됐다. 다만 당시 신고를 받은 합동참모본부가 북한군 이동 경로를 잘못 예측해 부대원들은 21일 밤 청와대에서 800m 떨어진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세검정 고개를 통과하려던 부대원들은 임시 검문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에게 신분이 발각됐고, 대치를 이어가다 부대원 중 한 명이 경찰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며 총격전이 시작됐다. 이 총격전으로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사망했으며, 인근을 지나던 시내버스도 전투에 휘말려 탑승객들이 수류탄 파편을 맞고 숨졌다. 총격전 이후 부대원들은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해 뿔뿔이 흩어졌다. 31일까지 이어진 군경 합동 수색을 통해 북한 부대원 2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북으로 도망갔다. 한국에선 25명의 군인과 민간인 7명 등 총 32명이 사망했다. 인왕산으로 몸을 숨겼던 김 목사는 수색대원에 발각된 뒤 투항해 북한군 중 유일하게 생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유일하게 투항... 1970년 귀순목사 안수 후엔 신앙생활 전념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귀순한 뒤 목회생활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연합뉴스북한 무장 공비로 청와대를 습격했다가 귀순한 김신조 서울성락교회 원로목사가 9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83세.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 목사는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북한군이 기습한 '1·21 사태' 당시 청와대로 향한 부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소속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부대는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로, 같은 해 1월 13일 북한군 정찰국장으로부터 '청와대 습격 작전 지시'를 받고 1월 18일 휴전선을 넘었다. 김 목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미 남파훈련을 꾸준히 받았던 부대라 청와대 습격 훈련은 정작 보름 남짓밖에 안 받았다"며 "독도법(지도를 보는 법)을 반복 훈련하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악구보를 하며 체력을 키웠다"고 회상했다.북악산 백악마루 인근에서 벌어진 총격전으로 총알 자국이 남은 소나무. 신상순 선임기자김 목사 등 부대원 31명은 낮엔 땅을 파 휴식을 취하고 밤 시간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만 하루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이동했다. 신분을 숨긴 채 경기 파주까지 진입한 부대원들은 19일 오후 한 야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무꾼이었던 우씨 4형제를 만났다. 부원들은 '땅이 얼어 시체를 묻기 어렵다'는 생각에 "신고하면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협박만 한 뒤 이들을 풀어줬으나, 우씨 형제들이 곧장 경찰에 간첩 신고를 해 동선이 노출됐다. 다만 당시 신고를 받은 합동참모본부가 북한군 이동 경로를 잘못 예측해 부대원들은 21일 밤 청와대에서 800m 떨어진 종로구 세검정 고개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세검정 고개를 통과하려던 부대원들은 임시 검문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에게 신분이 발각됐고, 대치를 이어가다 부대원 중 한 명이 경찰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며 총격전이 시작됐다. 이 총격전으로 최규식 종로경찰서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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